연봉 공개의 핵심은 ‘얼마’를 넘어 ‘언제’ 알려주느냐로 이동했다
EU Pay Transparency Directive의 국내법 전환 시한은 2026년 6월 7일이었습니다. 지침 Article 5는 구직자가 해당 직무의 초임 또는 급여 범위를 알 수 있어야 하며, 그 정보는 공개 채용공고나 면접 전 등 보상 협상을 충분히 알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정합니다. 또 기업은 지원자의 현재·과거 급여 이력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변화는 연봉 정보가 최종 오퍼 단계의 카드에서 채용 초기의 조건으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후보자가 여러 차례 면접을 거친 뒤에야 ‘예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구조보다, 기업과 후보자가 처음부터 같은 가격 구간을 보고 서로를 평가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과거 연봉을 묻지 못하면 협상의 기준점도 달라진다
전 직장 연봉은 오랫동안 이직 연봉을 정하는 편리한 기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가격이 ‘현재 회사가 이 역할에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보다 ‘이 사람이 이전 회사에서 얼마를 받았는가’에 오래 묶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EU 지침은 급여이력 질문을 금지하는 동시에, 기업이 임금수준과 임금상승을 결정하는 기준을 객관적이고 성중립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요구합니다. 따라서 채용팀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최소·최대 숫자가 아니라 직무의 책임, 숙련, 난이도, 경력 단계와 연결된 salary band의 논리입니다.
미국에서는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이 실제 공고와 임금을 움직였다
2025년 NBER Working Paper는 미국 여러 주의 급여범위 공개 의무화를 비교해, 법 시행이 급여정보를 포함한 채용공고 비중을 약 30%포인트 끌어올렸다고 분석했습니다. 세 개의 서로 다른 데이터셋에서는 임금이 1.3~3.6% 증가하는 결과도 일관되게 관측됐습니다. 연구진은 고용, 공고 수, 요구 학력·스킬에서는 뚜렷한 감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결과를 한국 시장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특정 주 법률을 이용한 연구이고 아직 Working Paper입니다. 다만 급여정보 공개가 단순한 공고 문구 수정에 그치지 않고 기업 간 임금 경쟁과 재직자에게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실증 신호로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급여 범위가 있다’와 ‘가격이 투명하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New York Fed는 Lightcast 데이터를 이용해 미국 온라인 채용공고 가운데 급여정보가 포함된 비중이 2018년 1월 이전 평균 약 15%에서 2024년 이후 약 53%로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도입 지역의 법 적용 대상 공고를 추정했을 때 2025년 1월 기준 약 24%는 여전히 급여정보를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규정을 지킨다고 해도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쓰면 후보자가 실제 오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은 ‘연봉란을 채웠는가’보다 그 범위가 실제 채용 가능한 구간인지, 후보자의 경력 단계가 범위 안에서 어떻게 가격화되는지, 예외가 어떤 기준으로 허용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에 가까워집니다.
급여가 보이면 지원자는 ‘지원할지 말지’를 더 빨리 결정한다
2025년 IZA 현장실험은 실제 구인공고에 급여정보를 무작위로 추가하거나 숨겨 지원행동을 비교했습니다. 급여 공개 자체가 평균 지원자 수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지만, 높은 급여의 공고에는 지원이 늘고 낮은 급여의 공고에는 줄어드는 식으로 지원자가 가격에 더 민감하게 움직였습니다. 평균 지원자 품질은 유의하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채용 운영 관점에서 이는 ‘모든 회사가 지원자를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상이 시장보다 약한 기업은 모호함 뒤에서 면접까지 후보자를 끌고 가기 어려워지고, 경쟁력 있는 보상을 가진 기업은 그 조건을 더 일찍 신호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외부 연봉 공개는 결국 내부 직원의 ‘나는 왜 이 가격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신규 채용공고에 6,000만~8,000만원이라고 적는 순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기존 직원의 보상과 연결됩니다. EU 지침이 채용 전 공개뿐 아니라 같은 일 또는 동일가치 노동의 평균 급여정보를 요청할 권리와 임금 결정·상승 기준의 투명성까지 함께 다루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Pay Transparency는 채용팀만의 프로젝트로 끝나기 어렵습니다. 직무 체계, 레벨 정의, 평가, 승진, 변동보상, 예외 오퍼가 하나의 논리로 연결돼 있지 않으면 외부에 공개한 가격표가 내부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구조가 정리된 기업은 후보자에게 ‘얼마까지 줄 수 있다’보다 ‘어떤 성과와 책임이 다음 가격으로 연결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후보자에게 필요한 준비는 ‘무조건 공개’보다 가격 기준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EU 지침은 회원국의 국내법 전환을 거치는 제도이고 미국 규칙도 주마다 적용대상과 범위가 다릅니다. 따라서 한국의 모든 채용공고가 곧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해외 인재를 채용하거나 글로벌 후보자와 경쟁하는 기업이라면, 급여 범위와 보상 기준을 더 일찍 요구받는 시장이 확대되는 흐름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은 채용을 시작하기 전에 역할별 현실적인 band, band 안에서 경력을 가격화하는 기준, 예외 승인 조건, 고정급·변동급·주식보상의 구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보자는 ‘현재 연봉에서 몇 퍼센트 올려주는가’만 보지 말고 제시된 band에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다음 레벨로 이동하는 기준과 총보상 구조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편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BANSEOG VIEW
연봉 공개의 본질은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직무가 이 가격인가’를 설명하게 만드는 데 있다
급여가 비공개일 때 기업은 후보자마다 다른 정보와 협상력에 기대어 가격을 정할 여지가 큽니다. 급여범위가 먼저 보이고 과거 연봉이 기준점에서 빠질수록 채용의 질문은 사람의 ‘현재 몸값’보다 직무의 책임과 희소성, 그리고 해당 후보자가 그 band의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로 이동합니다.
Search 회사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후보자를 모두 만난 뒤 연봉을 맞추는 것보다, 탐색 전에 고객사와 시장가격·직무 레벨·허용 가능한 예외를 정교하게 정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앞으로의 연봉 협상력은 정보를 감추는 데서보다 직무 가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설계하는 데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SOURCES
근거가 된 원자료
- European Commission — New EU rules on pay transparency explained
2026년 6월 5일 집행위 설명. 구직자에게 면접 전 초임 또는 급여 범위를 알리고, 과거 급여를 묻지 않는 등의 핵심 규칙을 정리했습니다.
- EUR-Lex — Directive (EU) 2023/970
EU 급여투명성 지침 원문. Article 5의 채용 전 급여정보 권리, 급여이력 질문 금지, Article 6~9의 보상 기준·정보권·보고 의무를 확인했습니다.
- NBER — The Impact of Pay Transparency in Job Postings on the Labor Market
2025년 NBER Working Paper. 미국 주 단위 급여공개 의무화가 급여정보 포함 공고를 30%p 늘렸고, 세 데이터셋에서 임금이 1.3~3.6% 증가한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 Do Employers Comply with Pay Transparency Requirements in Job Postings?
Lightcast 공고 데이터를 이용해 미국 급여정보 공고 비중 증가와 초기 도입 지역의 규제 준수 수준을 분석했습니다.
- IZA — Wage Information and Applicant Selection
실제 구인공고 현장실험에서 급여 공개가 지원행동을 어떻게 재배분하는지 분석했습니다.
- Massachusetts General Laws c.149 §105F
2025년 10월 29일부터 25명 이상 고용주의 특정 채용공고에 급여범위를 공개하도록 한 주 법률 사례입니다.
EU Directive 2023/970은 회원국이 국내법으로 전환하는 지침이므로 실제 적용시점·제재·세부 절차는 국가별 법률을 확인해야 합니다. 미국의 NBER·NY Fed·IZA 결과는 미국 및 해당 연구 표본의 인과·행동 신호이며 한국 시장에 동일한 수치를 직접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NBER와 IZA 자료는 Working/Discussion Paper 단계의 연구라는 점을 함께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