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만드는 곳은 거제인데, 설계·R&D 채용거점은 부산에서도 커지고 있다

2026년 9월 3일 부산시는 삼성중공업과 부산 R&D센터 확장이전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은 부산 남구에 1,700평 규모로 86억원을 투자하고,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과 연구개발 등 신규 인력을 대규모 채용할 계획이라고 부산시는 밝혔다.

바로 전날 거제시는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부산지역 설계센터 확대와 추가채용 계획에 공개적으로 재검토를 요청했다. 거제시가 파악한 계획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2030년까지 부산에서 설계인력 약 130명을, 한화오션은 2029년까지 약 400명을 추가 모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경계가 있다. 130명·400명은 회사가 투자공시로 확정한 최종 headcount가 아니라 거제시가 파악해 언론에 공개한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의 9월 3일 공식 MOU 자료는 부산 R&D센터 확대와 ‘대규모 신규채용’을 확인하지만 정확한 채용인원까지 명시하지 않는다.

거제 약 2,000명 vs 부산 약 350명 — 아직 설계 중심이 옮겨간 것은 아니다

같은 자료에서 양사의 현재 설계인력은 거제 약 2,000명, 부산 약 350명으로 파악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설계기능의 중심은 여전히 거제다.

따라서 ‘조선사들이 설계조직을 거제에서 부산으로 옮긴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공개근거보다 앞선 해석이다. 생산기지와 거제 설계조직이 유지되는 가운데 부산에서 추가적인 설계·R&D 인력을 확보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차이가 이번 기사의 핵심이다. 산업의 지도가 A도시에서 B도시로 통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은 기존 거점에 남고 일부 전문직무의 채용 접점이 다른 도시에도 만들어지는 복수거점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2023년 삼성중공업, 2025년 한화오션 — 부산 거점은 이미 전조가 있었다

이번 움직임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는 언론보도 등을 종합해 2023년 삼성중공업이 부산 R&D센터를 열면서 연구인력 약 120명이 경남에서 부산으로 이동했고, 2025년 한화오션이 부산 엔지니어링센터를 만들면서 설계인력 약 150명이 경남에서 부산으로 이동한 사례를 정리했다.

이 숫자 역시 현재의 전체 인력배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과거 특정 거점 개설 당시의 이동 사례다. 하지만 생산시설을 그대로 둔 채 R&D·설계 기능의 일부를 다른 도시에서 확장하는 방식이 이미 여러 해에 걸쳐 반복됐다는 맥락은 보여준다.

2026년 삼성중공업의 R&D센터 확장이전과 양사의 추가채용 논의는 그래서 단발성 채용공고보다 ‘전문인재를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라는 장기적인 조직설계 문제에 가깝다.

모든 조선업 직무가 도크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생산은 강하게 장소에 묶인다. 도크, 블록, 생산설비가 있는 현장에서 생산기술·시운전·품질·안전·정비 등 많은 역할이 실제 공정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역할별 location dependency는 같지 않다. 설계와 엔지니어링, 일부 연구개발은 생산현장과 긴밀한 협업이 필요해도 모든 업무가 매일 같은 물리적 장소에서 수행돼야 하는지는 역할별로 다를 수 있다.

공개자료만으로 ‘부산이 더 살기 좋아서 설계자가 간다’거나 특정 생활조건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확인되는 것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거제에 유지하면서 부산에도 설계·R&D 채용거점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인은 채용시장, 산업생태계, 프로젝트 운영방식 등 복수 요인이 결합됐을 수 있으므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거제시의 반발은 지역갈등이면서 동시에 ‘고부가가치 직무의 위치’ 문제다

거제시는 설계·연구개발 기능과 우수인력이 계속 역외에서 확대될 경우 거제가 단순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부산 확대 계획 재검토를 요구하고, 불가피할 경우 현장 직영인력 신규채용과 정주·교육 지원 등 상생책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반대로 부산시는 삼성중공업 R&D센터 투자가 해양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지역 청년·고급인력의 수도권 유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같은 기업의 같은 투자를 두 지역이 전혀 다른 인재 문제로 읽고 있는 셈이다.

기업에는 ‘필요한 전문인력을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이고, 지역에는 ‘어떤 고부가가치 직무가 지역에 남아 축적될 것인가’가 문제다. Talent Geography는 단순 주소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채용경쟁력과 지역의 산업구조가 만나는 지점이다.

사람을 못 구할 때, 채용광고보다 먼저 역할의 위치를 분해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전문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곧바로 ‘그 지역에는 사람이 없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먼저 역할을 현장 필수 업무와 위치 유연성이 있는 업무로 나눠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현장·설비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하는 책임은 생산거점에 남기고, 역할상 가능한 설계·분석·R&D 업무는 다른 인재시장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현장 proximity가 품질과 의사결정에 결정적이라면 분산 자체가 비용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행처럼 원격·분산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별 dependency를 증거로 판단하는 것이다.

채용전략의 질문도 ‘왜 지원자가 여기로 오지 않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역할 중 반드시 여기 있어야 하는 일은 무엇이고, 인재가 있는 곳에 별도 거점을 만들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함께 묻는 순간 채용 가능한 인재풀의 지도가 달라질 수 있다.

공장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재 확보의 경계는 공장 울타리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다

거제 약 2,000명과 부산 약 350명이라는 현재 배치를 보면 조선 설계기능의 중심이 부산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이번 변화의 정확한 표현은 ‘거제를 유지하면서 부산의 추가 설계·R&D 채용거점이 커지고 있다’에 가깝다.

기업이 지역 인력난을 겪을 때 총지원자 수만 늘리기보다 역할별 location dependency를 분해할 필요가 있다. 생산·시운전·현장품질처럼 현장에 묶인 책임과, 설계·R&D처럼 다른 인재시장과 연결할 여지가 있는 책임을 같은 방식으로 채용할 필요는 없다.

조선업에서 보이는 생산기지와 인재거점의 분리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방산·플랜트처럼 거대한 물리적 설비와 전문인력이 동시에 필요한 산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앞으로 산업지도를 읽을 때는 공장지도와 인재지도를 따로 그려볼 필요가 있다.

근거가 된 원자료

부산시 공식자료는 삼성중공업의 부산 R&D센터 1,700평·86억원 투자와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R&D 신규채용 계획을 확인하는 1차 근거로 사용했다. 삼성중공업 130명·한화오션 400명 추가모집과 거제 약 2,000명·부산 약 350명 수치는 거제시가 파악해 언론에 공개한 계획·현황이므로 회사 확정 공시처럼 표현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2023년 120명·2025년 150명 이동 사례는 언론보도 등을 종합한 과거 맥락이며 현재 headcount와 합산하지 않았다. 부산 확대가 주거선호 때문이거나 거제 설계조직이 대규모 이전한다는 주장은 공개근거가 없어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