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새로 만든 것은 AI 직무만이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9월 3일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시작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이앤씨, 포스코DX, RIST 등 6개사가 참여하고 전체 규모는 세 자릿수입니다. 모집대상은 생산·설비기술, 영업·마케팅, 안전·보건, AI 등을 포함한 60여 개 직무입니다.

기술직만 따로 보면 변화가 더 선명합니다.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은 로봇 인지와 제어 연구자를 모집하고, 포스코와 포스코DX는 제조현장과 사무업무의 AX를 추진할 AI 인재 채용을 확대합니다. 포스코는 이번 공채에서 아예 ‘AI Engineer’ 직무를 신설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채용에서 직무 신설만큼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원서를 평가하기 위해 기업이 지원자에게 묻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점입니다.

정형화된 자기소개서 질문을 없애고 ‘무엇을 해봤는가’를 묻는다

포스코그룹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포스코는 이번 채용에서 정형화된 자기소개서 문항을 폐지하고 ‘교내외 활동’ 항목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지원자는 직무역량을 갖추기 위해 실제로 해온 경험과 활동을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밝힌 목적은 직무와 관련된 역량을 더 정확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원동기, 성장과정, 장단점처럼 많은 기업에서 반복돼 온 공통서술보다 지원자가 어떤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을 만들었는지에 더 많은 공간을 주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스코가 ‘생성형 AI 때문에 자소서를 바꿨다’고 발표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인과관계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문장을 빠르게 다듬을 수 있는 시대에 기업이 실제 경험과 직무역량을 더 직접적으로 보려는 변화는 채용시장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신호입니다.

AI가 글을 잘 써줄수록 기업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경험의 밀도다

생성형 AI는 지원자의 문장을 훨씬 빠르게 정리해 줍니다. 표현을 다듬고, 직무에 맞는 키워드를 넣고, 회사의 가치와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의 비용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모든 지원자의 문장 품질을 함께 끌어올린다는 데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장을 잘 구조화하는 능력이 지원자 사이의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잘 정리된 문장 그 자체만으로 실제 역량의 차이를 읽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가의 무게중심은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본인의 책임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무엇이 실패했고 어떻게 고쳤는지,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했는지처럼 경험 속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포스코가 ‘경험’을 더 보려는 시점에 AI Engineer를 새로 만든 이유

포스코의 AI Engineer 신설은 단순히 IT 인력을 늘리는 흐름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포스코그룹은 올해 초부터 제조현장의 Intelligent Factory 확산, 고위험 수작업의 로봇 무인화, 사무업무의 AI 활용을 그룹 전략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포스코DX도 Physical AI와 Agentic AI를 두 축으로 AI Native Company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조현장에서는 사람·AI·설비·로봇이 함께 작동하는 Intelligent Factory를 만들고, 로봇 시뮬레이션·제어 기술과 AI 모델을 결합한 산업용 로봇 지능화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AI Engineer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안다’는 선언보다 현장의 문제를 데이터와 모델, 시스템, 자동화로 실제 바꿔본 경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장이 대상이면 생산조건과 설비제약을 이해해야 하고, 업무 AX라면 현업 프로세스와 데이터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기술이 실제 업무로 내려갈수록 경험의 맥락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신입에게 ‘경험을 보겠다’는 말은 경력자를 뽑겠다는 뜻과는 다르다

여기서 경험을 경력연수와 혼동하면 안 됩니다. 이번 채용은 신입사원 공채입니다. 신입에게 요구되는 경험은 수년간의 정규직 경력을 뜻하기보다 수업·프로젝트·연구·인턴·동아리·공모전·개인개발처럼 해당 직무를 준비하며 실제로 무엇을 시도했는지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활동의 이름보다 그 안에서 본인이 무엇을 했는가입니다. 같은 캡스톤 프로젝트라도 한 사람은 결과물 이름만 적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맡았고 어떤 판단을 했으며 어디까지 직접 구현하고 검증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신입 지원자의 경쟁은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자신의 경험에서 직무와 연결되는 증거를 얼마나 정확하게 꺼낼 수 있느냐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지원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자소서가 아니라 더 선명한 Evidence다

AI로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도구를 이용해 문장을 정리하는 것과 경험을 꾸며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히려 AI가 글쓰기 비용을 낮춘다면 지원자는 표현을 꾸미는 시간보다 실제 경험을 구조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프로젝트 경험’이라고 적는 대신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고, 무엇을 직접 만들었고, 어떤 오류를 만났으며, 성능이나 업무효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생산·설비 직무라면 개선 전후의 상태, 본인의 담당범위, 설비와 공정에 대한 판단 근거가 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잘 쓰인 문장을 골라내는 것보다 실제로 검증해야 할 경험을 먼저 정의하고, 서류와 면접에서 그 Evidence를 일관되게 확인하는 편이 채용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자기소개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뀔 수 있다

포스코의 이번 개편 하나만으로 한국 대기업의 자기소개서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마다 평가방식도 다르고, 서술형 질문은 지원자의 판단방식과 동기를 확인하는 데 여전히 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사례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한쪽에서는 AI Engineer와 로봇 인재를 새로 찾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입 지원서에서 정형화된 공통문항을 줄이고 실제 활동과 직무역량을 더 직접적으로 보려 합니다.

AI가 지원자의 문장을 비슷하게 만들어 갈수록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문장의 매끄러움보다 그 문장 뒤에 실제로 무엇이 있었는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채용에서 더 비싸지는 것은 ‘잘 쓴 경험’이 아니라, 질문을 바꿔도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실제 경험일 수 있습니다.

AI가 문장을 평준화하면 채용은 다시 ‘경험의 증거’로 내려갈 수 있다

포스코는 AI Engineer 직무를 신설하면서 동시에 정형화된 자기소개서 공통문항을 없애고 실제 활동과 직무역량을 더 자유롭게 쓰도록 지원서를 바꿨습니다. 두 변화는 별개의 제도이지만 같은 채용시장에서 함께 나타났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생성형 AI가 지원자의 문장을 빠르게 상향평준화할수록 기업이 확인해야 할 정보는 더 구체적인 경험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이름보다 책임범위, 키워드보다 실제 문제, ‘할 수 있다’는 주장보다 무엇을 해봤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지원자에게도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자소서를 더 화려하게 만드는 것보다 자신이 해온 경험을 직무의 문제와 연결하고,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무엇을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편이 더 강한 신호가 됩니다.

AI 시대에 희소해지는 것은 좋은 문장이 아니라, 좋은 문장 없이도 설명할 수 있는 실제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근거가 된 원자료

채용공고와 전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2026년 9월 3일 포스코그룹 공식 발표를 기준으로 합니다. 포스코는 지원서 개편 목적을 직무 관련 역량 확인으로 설명했으며, 생성형 AI가 개편의 직접 원인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의 AI 시대 평가 변화에 관한 내용은 공개된 채용 변화와 기술환경을 바탕으로 한 반석의 해석입니다.